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바 성역 회전 (문단 편집) == 결과 및 영향 == 전멸까지 각오했던 [[이제르론 공화정부]]는 [[율리안 민츠]]로부터 강화 성립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환희에 빠졌다. 그러나 뒤이어 20만 명에 달하는 전사자와 쇤코프, 메르카츠 등 고급지휘관들이 전사했다는 부고가 전해지자 요새에 잔류한 10만 명의 잔류부대는 그들을 애도했다. 특히 쇤코프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성들이 더 큰 슬픔에 잠겼다고 한다. 율리안은 프레데리카와 대화를 하는 자리에서 병력을 수습한 후 하이네센으로 향해 황제와 회견을 하게 될 예정이라고 밝혔고, 프레데리카는 드디어 하이네센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 모든 표현을 함축하였다. 그리고 [[알렉스 카젤느]]에게 사후처리를 주문했고, 카젤느는 제국군이 트집잡을 구석이 없도록 완벽히 정리하겠다고 받아들였다. 한편 제국군은 그들이 경애하는 황제가 불치병에 걸렸고, 시한부란 사실이 정식으로 공표되어 많은 제국군 지휘관들과 장병들이 비탄의 늪에 빠지게 하였다. 비텐펠트는 공황상태가 되어 "왜 오베르슈타인 같은 놈은 안 죽고 카이저께서 돌아가시는 거냐! 이 우주엔 정의도 진실도 없는 건가? 대신 오딘은 제물이나 받아먹는 게으름벵이냐!"라고 화를 내는데, 미터마이어는 비텐펠트를 질책하면서도 속으로는 저렇게 솔직하게 내뱉을 수 있는 비텐펠트를 내심 부러워했다. 이후 율리안 민츠는 사절로서 우주력 801년 6월 10일 [[하이네센]]으로 왔다. 율리안은 우선 [[무라이(은하영웅전설)|무라이]]의 안부를 확인하고 바렌과 뮐러 등 제국군 제독들과 교류했는데, 원작에서는 이를 두고 "이럴거면 처음부터 사이좋게 지내면 될 일이었다. 전사자들은 우스꽝스러운 처지가 되었으며, 그저 예정조화를 완성하고자 한 지도자들이 쓰다 내버린 도구에 불과했다"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엘 파실 정부 시절에 이미 화평 얘기가 나왔지만 갑작스럽게 양 웬리가 암살당한 이후 소리소문없이 화평 얘기가 쏙 들어갔다. 양 웬리 암살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일어나도 예정대로 화평을 했다면 은하영웅전설의 스토리는 최소 1권 분량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의미에서 보면 사실 양이 죽었다고 화평 얘기를 모르쇠한 제국의 잘못이긴 하나 제국 입장에서 굳이 할말이 있다면 양이 죽은 사태는 제국으로 하여금 민주공화주의 세력에게 양보를 하기 곤란해졌다고 보면 된다. 국가간의 '양보'라는 것은 그냥 되지 않고 양보를 받을 쪽에서 뭔가 격렬하게 항의하고 투쟁하지 않고 그냥 받게 되면 양보하는 쪽이 만만히 보이고 바보가 된다. 심지어 제국에는 250억이라는 골덴바움 왕조 시절부터 내려져오는 제국 신민들이 있고 이들에게 반동맹 감정을 심어 전쟁에 내보낸 상황. 그나마 양이 살아있을 때는 양이라는 불패의 명장을 내세워 납득이라도 시킬 수 있지 그가 죽은 이상 새로운 명분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양 사후에 제국에서는 구 동맹령에서 온갖 반 제국 운동이 벌어졌고 엘 파실 독립정부와 엘 파실 혁명군의 후신인 이제르론 공화정부와 이제르론 혁명군이 일어나며 어떻게든 살아남았으며 특히나 이 전투에서 이제르론 공화정부는 '''제국군 총기함인 브륀힐트에 침투하여 사령관인 율리안 민츠가 카이저 라인하르트 앞까지 오는 일이 발생했다!''' 비록 그 이후 민츠가 쓰러지고 전투 자체도 전술적으론 제국의 승리지만 그래도 대외적으로 보면 이제르론 혁명군은 '''은하제국 황제의 신변을 위협했기에''' 1:6의 병력차에도 불구하고 2:1의 손실을 내게 만든 엘 파실 혁명군 못지않은 실적을 거둔 것이고 구 동맹령의 반제국 폭동에 이러한 실적까지 놓고보면 이만하면 제국에서도 공화주의자와 다시금 화평을 맺을만한 명분이 생긴 것이다. 이제르론 군과 제국군이 [[하이네센]]에 체류하는 와중에 [[루빈스키의 불 축제]]가 벌어졌지만 회견은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6월 20일 오후 율리안 민츠는 옛 [[자유행성동맹군]] 중위 군복을 입고 황제와의 회견에 응했다. 율리안은 이 자리에서 [[헌법]] 제정과 [[의회]] 개설을 통한 입헌체제로 전환을 제안했는데, 카이저는 민주주의가 은하제국을 잠식할지도 모른다며 별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같이 [[페잔(은하영웅전설)|페잔]]으로 가서 차기 지도자로 오를 카이저린 [[힐데가르트 폰 로엔그람]]과 구체적인 논의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율리안이 이 제안을 수락하면서 제국군과 이제르론 사절단은 페잔으로 가게 되었다. 평가하자면, 전략적으로는 이제르론 혁명군의 승리, 전술적으로는 제국의 승리이다. 이 전투에서 이제르론 혁명군은 전 인원의 30~40%가 전사했다. 쇤코프, 메르카츠 등의 지휘관이 전사했으며 로젠리터의 대다수도 죽어서, 화평이 아니라 이제르론 혁명군의 후퇴로 이어져 이제르론에 틀어박혔다 해도 전력이 매우 약해져 더는 전투를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략적 승리도 라인하르트의 관용적인 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처음부터 라인하르트는 이들이 자신에게 뭘 원하는지 알고 있었고, 만약 라인하르트 전사가 이제르론 혁명군의 목적이었다면 화평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전력차가 너무 심해 어쩔 수 없긴 하나, 사실상 제국도 이제르론 혁명군도 서로가 원한걸 얻은 승리라 볼수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